인생의 막힘은 더욱 큰 은총입니다.
지난 주에 개인적으로 아는, 연로하신 장로님 한 분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성경을 읽다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왜 성경에 보면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의 율법을 낭독하는데, 이스라엘의 12부족을 반으로 나누어서 6부족은 그리심산에 세워서 축복 말씀에 ‘아멘’하게 하고, 다른 6부족은 에발산에 세워서 저주 말씀에 ‘아멘’하게 했잖습니까?”
“네, 그랬지요.”
“축복에 아멘하게 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에발산에 세워 저주에 아멘하게 한 6부족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그리 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요”
그래서 저는 다음의 이야기를 설명으로 들려드렸습니다.
성경에서 제사장의 에봇(예복 위에 어깨로부터 상반신에 걸치는 겉옷)에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제비인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뜻을 물을때, 우림이 나오면 허락이고, 둠밈이 나오면 불허였습니다. 우림은 히브리 말로 “빛”이라는 뜻 그대로 하나님께서 ‘빛으로 인도하심’이고, 둠밈은 “법”이라는 뜻 그대로 만일 그대로 진행했다가는 ‘법대로 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법대로라 함은 자신이 하는 그대로를 말함이고, 보너스나 은총은 없다라는 말입니다.
그럼, 우림이 나오면 은총이고, 둠밈이 나오면 저주일까요?
그건 우리의 짧은 생각이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둠밈은 둠밈대로 더욱 큰 은총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둠밈이 더욱 큰 은총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상대 민족과 전쟁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께 여쭈었다 합시다. 허락의 우림이 나오면 그건 승리를 보장받는 은총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럼 불허의 둠밈이 나오면 은총이 아닐까요?
그건 아니지요. 만일 둠밈이 나오지 않았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그 전쟁에서 패하여 목숨을 잃을 길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승리는 안해도 그만이지만,죽는 길을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끝장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치가 이렇기에 에발산에서 선포하는 저주에도 6부족은 아무 말 없이 아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코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거나 부족함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막기 위한 저주는 생명에 관련된 은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막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막힘은 어쩌면 만사형통의 은총보다도 더욱 큰 은총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막으실 때는 결코 있으면 좋을 정도의 은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피하지 못하면 죽을 길이라 막으심을 기억하면, 우리의 입가에 사랑 가득 느끼는 미소가 머물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