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교 시절 만들었던 히브리어 자판
[작성일 : 12.12.21 01:51]
근래에 맥스 루케이도의 책을 읽다가 내용만 달랐지 제게도 희한할 정도로 비슷한 경험과 깨달음이 있어 그의 이야기 패턴에 제 경험을 하나 대입해 보려 합니다.
오래전 제가 신학교에서 조교를 하고 있을 때에, 아는 분으로부터 그때 막 발표를 앞두고 있던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에 히브리어 자판과 헬라어 자판을 넣겠다고 타자 입력 방식과 표현 글꼴을 가지고 와서는, 잘못된 점이 없는지, 하나도 빠지면 아니되니 철저하게 점검해달라고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히브리어 자판은 장신대 신대원 학생 한분이 초안을 만든 것이고, 헬라어 자판은 다른 학교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때마침, 정말 한글 워드프로세서에서 히브리어 자판이 필요하겠다 싶었던 차라, 정밀하게, 하나 둘씩 히브리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에 있어야 할 글자 형태나, 입력 방식의 문제에 있어서 잘못된 점을 모두 기록하여 교정표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검토해보니, 히브리어 자음의 모양이 제대로 구별이 안되거나, 모음이 제 위치에 들어맞질 않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액센트 기호 30여개 중에 무려 18개나 빠졌습니다. 문단 기호도 생각을 못한 것 같은 점 등등... 수정해야 할 내용은 셀 수도 없었습니다.
교정표를 다 만들고 나니, 차마 그것을 전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만드신 분들의 얼굴을 너무 민망하게 만들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충격을 조절하느라고, 살살 하나씩 하나씩 눈치를 보며 말씀을 드렸습니다.
몇 개 말씀드리자마자, 바로 제 말투가 서툴렀는지, 상대방은 금새 눈치를 채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역시 이건 저희들이 할 일이 아니군요. 목사님께서 좀 맡아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결국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몇 달간 밤을 새면서 아래아 한글 프로그램의 히브리어 자판은 제가 직접 다시 만들어서 넣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의 교정표를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하듯이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모두 적어서 책에 기록해 두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도 히브리어로 성경이 기록되게 하신 분이 아니시던가?
나의 언어나 나의 행동의 언어나 내 마음 속의 언어나 잘못된 것을 찾아 적고 계시다면 그 분량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이런 잘못을 기록한 교정표라는 것은 존재할 수는 있어도 결코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알 수도 없는 교정표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이천년 전에 갈보리 언덕에 세워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제가 만들었던 교정표는 전해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전달하지 못한 대신 제가 그 일을 대신하여 대신 떠맡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방식!
이것이 예수님이 우리의 죄의 목록을 처리하신 방식이었습니다.
그 죄목록을 십자가에서 자신의 손에 박힌 못에 박아버리고,
“이제, 너희는 쉬어라. 내가 너희의 짐을 지겠다.”라고
말씀하셨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람의 수고 하나를 덜어주고, 대신 작업 한 가지를 져 준 것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존재'의 문제를 대신 지기로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십자가의 은혜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체험하고 있을까요...